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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스토리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기업가 래리 엘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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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엘리슨 Larry Ellison

 

 

가난한 청년에서 IT 업계의 거인으로

래리 엘리슨의 이야기는 미국 이민자의 꿈을 현실로 만든 대표적인 성공 신화입니다. 1944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양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양아버지는 부동산 개발업자였지만 대공황으로 인해 사업이 실패하면서, 엘리슨은 결코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대학을 두 번이나 중퇴한 그는 1966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컴퓨터에 대한 재능을 발견했고, 이는 후에 오라클을 창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초기 경력은 불안정했지만, 이 시기의 경험들이 훗날 비즈니스 감각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라클의 성장과 혁신적인 리더십

1977년 엘리슨은 Software Development Laboratories(현 오라클)를 공동 설립했습니다. CIA 프로젝트 코드명인 'Oracle'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는 혁신적이었습니다. 그는 IBM보다 먼저 상용 SQL 데이터베이스를 시장에 출시하면서, 데이터베이스 시장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슨의 공격적인 영업 전략과 기술적 혁신은 오라클을 급성장시켰습니다. 특히 1986년 기업공개(IPO) 이후, 오라클은 수많은 기업을 인수하며 규모를 키웠습니다. 그의 대담한 인수합병 전략은 때로는 논란을 일으켰지만, 결과적으로 오라클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기술 혁신가이자 비전을 가진 리더

엘리슨은 오라클을 설립할 때 IBM 연구 논문에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에 대해 읽은 내용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는 즉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가 기업의 운영 방식을 혁신할 수 있는 엄청난 상업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977년, 엘리슨과 그의 동료들은 2,000달러의 자금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2년 후, 그들은 대규모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기 위한 최초의 상용 구조화 질의 언어(SQL)를 개발했습니다. 1979년에 출시된 Oracle 2는 최초의 상용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였으며, CIA가 초기 고객 중 하나였습니다.

 

 

 


기업가 정신과 전략적 성장

엘리슨은 1986년 오라클을 상장한 후, 1990년 첫 분기 손실과 기만적인 판매 회계에 대한 폭로로 인한 주가 하락 등 주요 혼란을 겪으면서도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1992년 인기 있는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인 Oracle 7의 출시로 상황이 개선되었고, 이는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엘리슨의 리더십 하에 오라클의 성장을 이끈 또 다른 요인은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해준 일련의 전략적 소프트웨어 인수였습니다. 여기에는 Sun Microsystems(정보 기술), Hyperion Solutions(비즈니스 인텔리전스), Retek(소매), Siebel Systems(고객 관계 관리), PeopleSoft(인사, 재무, 공급망, 기업 성과, 고객 관계 관리) 등이 포함됩니다.

 

 

 


개인적 취미와 자선 활동

엘리슨은 요트 경주에 대한 열정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Oracle Team USA를 통해 요트 경주에 참가하며, 2010년에는 제33회 아메리카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2019년에는 국제 경주 시리즈인 SailGP를 설립했습니다.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인 엘리슨은 의료, 교육, 군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 상당한 기부를 해왔습니다.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에 Lawrence J. Ellison 근골격계 연구 센터를 설립했으며, 암 연구를 위해 남캘리포니아 대학교에 2억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화려한 취미생활과 경매 열정

엘리슨은 요트, 비행기, 고급 부동산 등 화려한 취미생활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그의 예술품 수집과 경매 참여는 업계에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04년에는 일본 에도 시대의 미술품 경매에서 1천만 달러 이상을 지출했으며, 현재 그의 일본 미술품 컬렉션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2012년 라나이 섬 경매 참여입니다. 엘리슨은 하와이 라나이 섬의 98%를 약 3억 달러에 매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부동산 투자를 넘어서, 그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섬의 환경 보존과 지속 가능한 개발을 통해, 그의 독특한 경영 철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술 혁신과 미래에 대한 비전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가 도래하면서 엘리슨은 오라클의 방향을 과감히 전환했습니다. 전통적인 데이터베이스 회사에서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로의 전환은 많은 도전과 위험이 따랐지만, 그의 선견지명은 옳았음이 입증되었습니다. 특히 AI와 머신러닝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오라클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엘리슨은 오라클의 CTO로서 여전히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자율주행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혁신적인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는 데이터베이스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끊임없는 혁신 추구는 실리콘밸리의 다른 기업가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래리 엘리슨의 경매 이야기

엘리슨의 경매 참여는 항상 화제가 되었습니다. 201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모네의 작품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며, 최종적으로 2,300만 달러에 낙찰받았습니다. 이는 당시 모네 작품의 경매 최고가를 경신한 것이었습니다.

2015년에는 일본 사무라이 갑옷 컬렉션 경매에서도 주목할 만한 활약을 보였습니다. 특히 16세기 다테 마사무네의 갑옷을 약 450만 달러에 낙찰받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경매 참여는 단순한 수집을 넘어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보존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현재 그의 개인 미술관에는 이러한 경매를 통해 획득한 수많은 귀중한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인수전

2010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매각을 위한 경매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경매는 조 레이콥이 이끄는 그룹과 래리 엘리슨이 이끄는 그룹 간의 경쟁으로 좁혀졌습니다. 당시 엘리슨은 포브스 선정 세계 6위 부자로, 280억 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레이콥은 엘리슨과의 입찰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전략을 바꿨습니다. 그는 경매 규칙을 우회하여 팀 소유주인 코한을 직접 만나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레이콥은 더 이상 입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코한에게 절대적으로 수락할 수 있는 가격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결국 두 당사자는 4억 5천만 달러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매각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후 엘리슨은 성명을 통해 자신이 최고 입찰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코한이 다른 사람에게 팀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례는 대규모 비즈니스 세계의 치열한 경쟁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레이콥의 전략은 더 많은 자금을 가진 경쟁자를 상대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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